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스티니아노스 2세 (문단 편집) === 2차 즉위 === >마치 콧구멍에서 콧물을 닦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의 죽음을 명하였다. > ---- >파울루스 디아코누스[* 영어명 Paul the Deacon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몇 십년 정도 후에 랑고바르드 왕국 ~ 프랑크령이었던 북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베네딕토회]] [[수도자|수도사제]]였다. 랑고바르드의 역사(Historia Langobardorum)를 집필한 바 있고 오늘날에도 잘 전해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 앞에 도착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3일 동안 대기하면서 수비병에게 성문을 열라고 요구했지만 수비병과 시민들은 조소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동안 정찰병들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옛 수도가 성벽 아래를 통해 도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병사 몇 명만을 데리고 직접 수도를 따라 들어가서 성벽의 북쪽 끝에 위치한 블라케르니아 궁전의 바로 바깥에 도착해 졸고 있는 경비병들을 해치웠다. 이렇게 해서 궁전은 유스티니아노스 2세와 병사 몇 명에 의해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이튿날 아침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궁전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접한 티베리오스 3세는 비티니아로 도망쳤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은 야만족에게 약탈당하느니 항복하기로 하고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복종했다. 얼마 후, 티베리오스 3세는 체포되었고,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폐위시키고 코를 잘랐던 레온티오스도 수도원에서 끌려나왔다. 706년 2월 15일, 두 사람은 사슬에 묶인 채 시내를 가로질러 원형 경기장을 돌았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오물을 던졌다. 그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그들의 목에 발길질을 한 번씩 가했다. 그러자 군중은 성경의 [[시편]] 91장 13절[*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를 읊었다. 이후 두 사람은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되었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제위에 복귀한 뒤 불가르 왕 [[테르벨]]의 어깨에 자주색 황제복을 걸쳐주며 그를 부제로 공식 임명했다. 이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티베리오스 3세와 레온티오스의 측근 및 지지자들을 모조리 참수하거나 교수형에 처했고, 두 반역자의 대관식을 치러준 갈리니쿠스 총대주교는 두 눈을 뽑힌 후 로마로 추방되었다. 그 밖에 수많은 시민들이 고문과 사지 절단 형벌을 당했다. 한편 하자르족의 카간 이부지르는 [[하자르의 테오도라|테오도라]]와 아들 티베리오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냈고, 테오도라는 로마 제국 역사상 최초의 이민족 출신 황후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